중국여인열전 - 여태후 (2)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1/09/14 [10:29]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1/09/14 [10:29]
중국여인열전 - 여태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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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장 김용일
 
 
고조 10년 진희가 반란을 일으키자 고조는 친히 군대를 거느리고 토벌에 나섰으나 진희와 약속을 한 한신은 병을 핑계로 따라가지 않고 은밀히 사람을 진희에게 보내 군사를 일으키면 내가 여기서 돕겠다고 전하고 그의 가신들과 의논해 밤에 거짓조서를 만들어 여러 관가에 갇혀 있는 죄수들을 석방하게 하고 여후와 태자를 습격하기로 했다.

각 부서의 책임자를 정한 다음 진희의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 그의 수하 한사람이 한신에게 죄를 지어 그를 죽이려고 하자 그의 동생이 한신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여후에게 찾아가 고변했다. 여후는 한신을 부르고자 했으나 그가 오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소하와 상의 하고 사람을 시켜 한신에게 거짓으로 진희를 토벌하기 위해 친정중인 천자가 보낸 것처럼 속여 진희는 이미 죽었다고 말하게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열후와 군신들이 승상 소하가 꾸민 계책인지도 모르고 모두 와서 축하하자 승상 소하는 한신에게 사자를 보내 “비록 병중일지라도 들어와서 축하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느냐?”고 하자 한신은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신이 들어서자마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힘센 무사들이 재빨리 한신을 포박하여 베어 죽여 버렸다. 그런 다음 여후는 한신의 삼족을 모두 멸했다. 고조는 진희를 토벌하고 돌아와서 한신의 죽음을 듣고 한편으로는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슬퍼했다.

고조 7년(기원전 200년)에는 한왕 신이 모반을 일으켰다. 한왕 신은 원래 한양왕의 서손으로 고조와 항우가 싸우고 있을 때 한신이 한나라를 평정하자 이 나라 출신인 장량의 추천에 따라 한왕이 되었다.

고조는 한왕에게 북방의 흉노를 방어하게 하기 위해 도읍을 진양에 정하게 하였다. 그러다가 한왕이 흉노를 방어하기에는 진양보다는 마읍이 유리하다고 상소를 올려 이를 고조가 승낙하여 마읍으로 도읍을 옮겨 흉노의 방어기지로 삼았다. 당시 흉노는 묵특이라는 능력 있는 수장이 나타나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그 세력이 자그마치 30만이나 되었다. 이렇게 흉노가 세력을 확장 할 수 있었던 것은 진나라 말기의 혼란과 유방과 항우의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흉노는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세력을 키울 수가 있었다.

흉노는 이 강력한 군사력으로 마읍을 포위했다. 그러자 한왕 신은 여러 차례 사자를 보내 강화를 요청했다. 한나라는 군대를 출동시켜 한왕 신을 구원했으나 한왕이 흉노에게 사자를 파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에게 혹시라도 모반할 뜻이 있지 않을까 해서 마읍으로 사자를 파견하여 한왕을 꾸짖었다.

그러자 한왕 신은 아무리 변명을 해도 지금까지 흉노와 내통했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 여러 가지 생각 끝에 마침내 흉노와 약속하고 한나라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흉노에 항복한 다음 태원을 공격했다.

고조는 친히 군사를 이끌고 한왕의 군사를 동제에서 격파하고 장수 왕희를 베어죽이니 한왕은 흉노에게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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