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인열전 - 여태후 (1)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1/09/06 [17:18]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1/09/06 [17:18]
중국여인열전 - 여태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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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장 김용일

 
 
기원전 202년(고조 5년) 한고조 유방은 범수의 남쪽에서 황제의 위에 오른 다음 군신들을 이끌고 낙양으로 돌아와 공신들에 대한 봉작을 시행했다. 유방이 황제의 위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는지라 이들에 대한 포상을 하기로 한 것이다.

제왕 한신을 초왕으로 삼아 하비에 도읍하게 하였고 건성후인 팽월은 양왕으로 봉해 정도에 도읍하게 하고 한왕 신을 한왕으로 삼아 양책에 도읍하게 하고 형산왕 오예를 장사왕으로 삼아 임상에 도읍하게 했다.

그리고 군대를 해산하여 고향으로 돌려보낸 다음 장량의 건의를 받아들여 함양 근처의 장안에 새로운 도읍을 정하고 옮겨갔다.
고조 6년 “초왕 한신이 역모를 꾀했다.”라는 상소가 올라왔다. 고조는 한신이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알고 있기에 진평의 계책을 채용하여 천자의 순행을 핑계 삼아 한신을 유인해내기로 했다.

고조는 제후들에게 “운몽(雲夢)에서 노닐고자 하니 진(陳)에 모이라.”고 사자를 보냈다. 그러나 한신은 이것이 자기를 유인하기 위한 수단인지 모르고 고조를 찾아갔다.

고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힘센 무사들이 뛰쳐나와 한신의 팔을 비틀어 손을 묶어 버렸다.
고조는 한신에게 “어떤 사람이 공이 역모를 꾀했다고 고변하는 자가 있었기 때문에 체포했노라.”고 한 다음 그를 심문했으나 별다른 혐의가 없어 풀어주고 말았다. 그렇지만 한신의 직위는 왕에서 회음후로 격하되고 말았다.

그 후 한신은 고조가 자신의 유능함을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항상 병을 핑계 삼아 조회에도 나가지 않았으며 천자의 거동에도 수행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진희가 거록수에 임명되어 한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오자 한신은 좌우를 물리친 뒤 진희의 손을 잡고 탄식하며 말했다.
“공의 임지는 천하의 장병이 있는 곳일뿐더러 폐하의 신임과 사랑을 받고 있어 남들이 공이 배반했다는 말을 해도 처음에는 믿지 않을 것이고, 두 번 말하면 의심할 것이고, 세 번 말하면 그때는 성을 내어 공을 치러 올 것이오. 그 때 내가 공을 위해 안에서 일어나면 가히 천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오.”

이 말을 들은 진희는 한신의 유능함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임지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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