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인열전 - 달기(4)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1/05/31 [11:36]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1/05/31 [11:36]
중국여인열전 - 달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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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원장 김용일  © 주간시흥
무왕이 한차례 시위를 하고 돌아온 뒤에도 주왕의 포악함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왕자인 비간을 죽여 심장을 난도질 하는가 하면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는 폭군이 되자 종묘를 받드는 태자 사와 소사 강이 제기와 악기를 가지고 주나라로 도망쳐 왔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무왕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제후들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 주의 도읍인 풍읍은 사기충천해 있어 무왕을 선두로 태공망 여상과 무왕의 동생인 주공단, 소공, 필공이 좌우를 따랐고 3백대의 전차와 용장의 통솔아래 4만5천의 군사가 진군을 시작하여 맹진에 이르자 그곳에는 4천대의 전차를 거느린 제후들의 군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무왕의 군대는 동쪽을 향해 진군을 계속해 은나라의 교외인 목양 이르러 진을 치고 최후의 결전에 대비했다. 향락에만 빠져있던 주왕도 주(周)나라 군대의 진군 소식을 듣고 사태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전 병력을 동원하여 목야로 나왔는데 수적으로는 우세했지만 모두 오합지졸이어서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대부분 무기를 거꾸로 들고 항복했고 어떤 부대는 오히려 등을 돌려 주나라 군대와 함께 주왕의 공격에 가담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은나라 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아 주왕은 목야에서 도망쳐 수도 조가에 있는 녹대로 올라갔다.

주왕을 추격하던 주나라 군대가 녹대를 에워싸자 녹대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주왕 스스로 백성들의 고혈을 짜서 만든 보석으로 장식한 옷을 입고 불을 지른 다음 그 속으로 몸을 던진 것이었다.

주왕이 녹대에서 스스로 불에 타 목숨을 끊은 후 무왕이 제후들을 거느리고 은나라 수도에 입성하자 은나라의 모든 신하와 백성들이 교외에 까지 나와 이들을 영접했다.  

주왕이 달기를 잡아 들여 심문하자 그녀가 당당히 말하기를 “나에게 공은 있으되 죄는 없다. 만약 내가 주왕을 유혹하지 않았다면 너희들의 힘만으로 어떻게 은나라를 정복할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느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몹쓸 년으로 욕을 하고 질투해 여우같은 여자로 알고 있겠지만 그것이 아니다. 내가 죽은 후에 너희들이 깨닫겠지만 나는 주왕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백성들을 위해 주왕이 하루 속히 죽기를 바라고 나에게 빠지게 했던 것이다. 너희들은 내 깊은 뜻을 알고나 있느냐?”고 말했다.

죽음을 앞두고도 기품을 잃지 않겠다는 절규로 보여 지는 항변을 하고 달기는 미녀다운 최후를 맞이했다. 이로써 은나라는 멸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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