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인열전 - 달기(3)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1/05/26 [13:51]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1/05/26 [13:51]
중국여인열전 - 달기(3)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편집위원장 김용일   © 주간시흥
인재를 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서백이 어느 날 사냥을 가기 위해 점을 쳐보니 점괘가 대길이라고 나왔다. 점괘의 내용은 이러했다.
 
“얻는 것은 용도 곰도 교룡도 범도 아니고 패왕을 보좌할 인물이다.” 이 말을 들은 서백은 내심 기뻐하면서 사냥을 나가 이리저리 말을 달리며 사냥을 했지만 이날따라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말은 이미 위수 기슭에 당도해 있어서 강기슭을 바라보니 한 노인이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서백은 예사로운 사람이 아님을 느끼고 곁으로 다가가 정중히 인사를 나눈 후 몇 마디 말을 나누는 사이에 그만 감탄을 하고 말았다.
 
“저의 태공(고조부인 고공 단보)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언젠가는 성인이 나타나 주나라에 올 것이니 주나라는 이 성인을 얻어 번창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야말로 그 사람이니 삼가 가르침을 바랍니다.”라고 정중히 말했다.
 
이 말에 여상은 서백을 섬길 것을 다짐하며 따라갔다. 이에 서백은 여상을 스승으로 받들었으며 여상은 주나라가 천하를 제패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태공이 무척 기다린 사람이라 하여 태공망(太公望)이라는 호가 붙여졌으며 후세에 이르러 태공은 낚시꾼의 대명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 후 서백은 더욱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니 이런 소문은 차차 먼 나라까지 퍼져 제후들의 마음은 모두 서백에게로 쏠렸다. 그러나 서백(문왕)은 주나라가 대업을 달성하기 전에 죽고 말았다.
 
서백이 죽자 그의 아들 발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무왕이다. 무왕은 죽은 아버지를 문왕이라 추존하고 태공망 여상을 사부로 삼아 상보라 불렀으며 모든 일에 자문을 받는 한편 동생 주공 단이 빈틈없이 그를 보좌하여 아버지의 유업을 닦아나갔다. 선정을 베풀어 민심을 모으고 군대를 정비하여 나날이 포악해져가는 주왕을 응징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왕이 즉위한 지 9년 후 그는 아버지의 능묘가 있는 필 땅에 나가 제사를 지내고 군대를 정비하여 맹진까지 진격했다. 이때 그는 문왕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무왕 자신은 태자 발이라 칭하며 이번 원정이 문왕의 의사임을 표시했다.
 
이번의 군사행동은 두 가지 뜻이 있었는데 하나는 주왕을 위협하여 그의 포악함을 반성시키자는 뜻이었고 또 하나는 아버지 이래의 명망이 어느 정도여서 이번 거병에 얼마만큼의 제후들이 모이는가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주나라 군대가 맹진에 이르니 예상보다 많은 8백의 제후가 모여 진을 치고 있었다.  
 
8백의 제후가 모여드니 주나라 군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했고 모인 제후들은 무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니 주왕을 토벌하기에는 좋은 기회였지만 무왕은 지금은 주왕을 정벌할 때가 아니라는 이유로 군사를 돌렸다. ‘왜냐하면 은나라가 아무리 학정에 시달리고 부패했다고 하도라도 아직은 그렇게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간시흥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