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 (3)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1/04/05 [16:07]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1/04/05 [16:07]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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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일 편집위원장   © 주간시흥
인기도 없고 비도덕적이었고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만 남긴 베트남 전쟁이 끝난 이듬해 지미 카터라는 생소한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지미 카터는 정통 민주당 출신이 아니라 외부에서 영입된 인물이어서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민주당 출신 인사를 고용하지 않고 주로 자신과 친분이 있는 외부전문가를 주변에 두고 정책을 논의했기 때문에 민주당의 협조를 얻지 못해 그의 정책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세계의 화약고라는 중동에 평화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대통령 휴양지인 캠프데이비드에서 이집트와 중동의 평화협정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를 방문한 첫 번째 대통령이었으며 인종차별을 비판하고 인권을 원조제공의 기준으로 삼는 등 베트남 전쟁으로 땅에 떨어진 미국인의 이미지를 국제무대에서 크게 끌어올렸다.

그러나 1987년에 터진 이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은 끝까지 미국정부를 괴롭혔다. 미국은 친미 독재정권인 팔레비 국왕을 지지하고 있었으나 근대화와 독재를 반대하는 세력에 의해 팔레비가 쫓겨나 미국으로 가자 분노한 군중들이 미국대사관을 점거하여 미국인 40여 명을 인질로 삼고 팔레비를 이란으로 넘기라고 요구하며 1년이 넘게 카터 행정부와 씨름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1980년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 공화당이 배우 출신인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레이건을 출마시켜 당선시켰다.

레이건은 새로운 정책 '레이거 믹스‘라는 정책을 들고 나왔는데 그 핵심은 재정축소와 세금감면이었다. 기업에게 세금을 많이 내라고 하기보다는 그 돈으로 투자를 확대하도록 유도하면 일자리도 늘고 기업과 산업도 활성화 된다는 이론으로 정부는 가급적 규제를 풀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호하는 작은 정부가 되어 시장의 자유를 최대한 보호하여 경제활동을 자율에 맡긴다는 신자유주의 개념이었다.

레이건의 등장과 함께 미국은 보수주의로 돌아섰고 소련을 ‘현대세계 악의 집결지’로 선언하여 미소간 대립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레이건은 강한 미국을 표방하며 국방예산을 크게 늘렸는데 그의 임기동안 무려 2배 이상 증가하여 미국의 군사력은 어느 때보다 막강해졌다. 미소간의 적대관계는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사건으로 극에 달했다
 
이 사건은 대한항공 여객기가 실수로 소련 영공에 들어선 것을 수련 전투기가 격추시켜 269명의 민간인이 몰살당한 사건으로 레이건은 즉각 소련의 야만적 행위를 규탄하고 국방예산을 크게 늘리는 이유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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