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 (1)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1/03/24 [11:11]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1/03/24 [11:11]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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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일 편집위원장   © 주간시흥
1960년 선거에서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케네디의 등장은 미국인과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카톨릭교도 대통령이었고 미국 상류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난 아일랜드계 핏줄이었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공화당의 경쟁자 리처드 닉슨과의 선거전은 최초로 TV 토론이 생중계 되었으며 케네디가 들고 나온 뉴트런티어(New Frontier) 정책의 실상은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을 새롭게 포장한 분배중심 정책으로 점차 흐지부지 되어 요란한 구호만 남긴 채 스스로 실패를 인정한 별 볼일 없는 정책이었다.

케네디의 가장 큰 업적이자 실수는 외교로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려다 무참히 실패해 큰 비난을 받았다. 미국의 뒷마당이나 다름없는 쿠바에서 1958년 대학교수 출신인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켜 친미 정권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아이젠하워는 그를 미국편에 잡아 놓기 위해 미국에 초청하여 극진한 대접을 해주었지만 카스트로는 미국 자본을 국유화하는 등 노골적으로 반미정책을 시행했다.

케네디는 취임 후 이런 쿠바를 그냥 둘 수 없다는 판단으로 쿠바에서 망명해 온 1,500명을 무장시켜 쿠바에 상륙시켰지만 이들 모두 카스트로군에 사살되거나 체포되어 케네디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이 사건은 미국에 대단히 치욕적인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소련을 자극하여 동독에 소련군을 증강시키고 베를린 장벽을 쌓게 하였으며 핵실험을 다시 하는 등 미, 소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러던 1962년 10월 케네디는 놀라운 보고를 듣게 되었다. 쿠바에 소련의 미사일 기지가 건설되고 있다는 보고였다. 미국의 코앞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한다는 것은 미국의 안전에 중대한 위협으로 판단한 케네디는 즉각 미국의 전함들로 하여금 쿠바를 봉쇄할 것을 명령하고 미사일기지 건설 자재를 싣고 오는 모든 선박은 수색을 받을 것과 이를 거부할 경우 발포하여 격침시키겠다는 초강경 발언을 했다.
 
소련이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고 계속 배를 쿠바로 향한다면 이는 곧 미국과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며 공산과 자유진영으로 나뉘어 치열한 냉전을 벌이던 차에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지도 모르는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결국 소련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미국의 요구에 응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케네디의 쿠바 전복기도사건의 실수를 만화하게 해주었고 그의 인기가 상승했다.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로까지 치달았던 쿠바봉쇄는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지만 이를 계기로 미국과 소련 간에 새로운 관계가 정립되어 핵실험금지 협상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인기정상에 있던 케네디는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의 댈러스에서 오스왈드의 총탄에 암살되었고 며칠 뒤 오스왈드는 잭 루비에게 암살되어 케네디의 암살배경은 영원한 비밀에 묻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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