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경찰국가 미국 (3)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1/03/15 [10:25]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1/03/15 [10:25]
세계의 경찰국가 미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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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일 편집위원장  © 주간시흥
미국의 소련 봉쇄전략과 함께 아이젠하워 시대에 냉전은 더욱 치열해졌고 이 시기의 미국외교 중심에는 델레스 국무장관이 있었다. 서방과 공산세력이 가장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역이 바로 중동과 서아시아였다. 텔레스는 바그다드 협정으로 서아시아 국가들을 결속시키고 터키를 서방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수에즈 운하를 끼고 있는 이집트로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아랍권을 주도하던 지도자로 제3세력을 표방하며 미국에도 소련에도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과 소련을 경쟁시켜 실속을 차리고 있었는데 몸이 단 미국으로부터 아스완 댐 공사 지원 약속을 받았다. 이 공사는 천문학적 돈이 들어가는 인류역사의 대공사였다. 그러나 아이젠하워의 지원 약속은 미국 여론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여론에 굴복한 미국은 지원약속을 거두어들였고 수에즈 운하를 관할하던 영국과 프랑스 등 나토회원국들도 태도를 바꾸자 나세르 대통령은 격분하여 수에즈 운하를 점령하라고 명령했다.

1956년 7월 26일 이집트군이 수에즈 운하를 점령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의 원수인 이스라엘과 비밀협정을 맺고 10월 31일 수에즈 운하의 봉쇄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이 지역에 공습을 감행함으로써 전쟁이 터졌다. 이에 소련은 즉각 이집트에 군사지원을 약속했고 미국도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이스라엘을 비난하자 이들은 물러 날수밖에 없었다. 

수에즈 운하 사태를 비롯하여 1950년대 초의 국제정세는 과거와 크게 변해 그동안 200년간 세계를 주름잡았던 영국은 이제 더 이상 강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 세계가 확인했으며 프랑스는 아예 강대국 대열에서 이탈하여 이제 미국은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초강대국으로 세계무대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소련과의 냉전이 심화되어 세계 곳곳에서 갈등을 빚었고 국내 경기는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고통의 연속이었으며 사회적으로는 흑백 인종 갈등이 심화되는 등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0년간은 미국이 20세기 말까지 겪어야 할 고통스러운 사건의 서막이었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이 있은 지 100년이 지난 1950년대에 들어서도 흑인의 지위는 별로 나아진 게 없었다. 1896년에 내려진 대법원 판결인 “흑인은 구별되는 것이지 차별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흑인은 구별되지만 평등하다.”고 했지만 백인과 흑인은 철저히 분리되고 학교, 공원, 화장실은 물론이고 버스까지 흑인과 백인은 섞일 수가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트루먼 대통령은 군대에서의 흑백차별을 금지하고 아이젠하워도 흑백차별을 없애는데 큰 노력을 기울여 1954년 학교 내 흑백차별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1950년대 흑인인권운동의 기폭제가 되어 마틴 루터 킹 이라는 흑인 목사가 민권운동의 지도자로 떠올라 1955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버스승차 거부운동을 시작으로 흑인민권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국에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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