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과 미국 (4)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1/02/28 [16:43]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1/02/28 [16:43]
제2차 세계대전과 미국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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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일 편집위원장     © 주간시흥
1945년 1월 미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네 번째로 대통령 취임선서를 했던 루스벨트는 불과 석 달도 되지 않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 미국인과 국제사회가 커다란 충격에 빠진 가운데 지도력을 검증 받지 못한 해리 트루먼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물려받았다.

1945년 5월 7일 독일이 무조건 항복해서 유럽에서의 전쟁은 끝이 났다. 이제 미국은 모든 군사력을 모아 일본의 목을 조르는 일만 남았다. 일본이 패전의 기색이 역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항복을 거부하며 완강히 저항하자 7월에는 소련이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노리고 일본과의 전쟁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미국의 입장이 다급해졌다. 그때 트루먼 대통령은 한 가지 극비 보고를 받았다. 그것은 바로 뉴멕시코에서 극비리에 진행되었던 핵폭탄에 대한 것이었다. 핵폭탄 개발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핵무기의 실전 투입을 극력 반대했다. 그러나 끝까지 항복하지 않는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미군은 계속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었고 만약 소련이 참전한다면 미국은 승전의 대가 중 대부분을 소련에게 넘겨줄 수 밖에 없다는 조급함이 트루먼 대통령으로 하여금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게 만들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한 개의 폭탄이 터지면서 무려 8만 명이 그 자리에서 또는 후유증으로 생명을 잃는 거대한 비극의 현장이 되었다. 8월 8일 다급해진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투를 개시했고 8월 9일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그러자 일본은 8월 14일 모든 전투를 중단하고 9월 14일 미국 군함 미주리호 갑판에서 공식 항복문서에 조인함으로써 약 5,3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전쟁이 끝나자 지금까지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강대국들은 주도권을 잃었고 그 틈에 자연스럽게 미국과 소련이 초강대국으로 떠올랐다.

미국과 소련은 비록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동맹을 맺고 군국주의라는 공동의 적과 함께 싸웠지만 이 두 강대국은 서로 다른 이념을 신봉하는 결코 융화할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였기에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미국은 소련을 차단하지 않으면 장차 전 세계가 공산화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소련은 주변에 가능한 많은 공산국가들을 동맹국으로 만들어두지 않으면 피 흘려 이룩한 공산주의 체제가 탐욕스러운 자본주의 세력의 침략으로 위협받을까 두려워 미국과 소련은 전 세계 곳곳에서 대립하고 경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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