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과 미국 (3)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0/11/02 [00:11]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0/11/02 [00:11]
제1차 세계대전과 미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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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원장 김용일



미국이 전쟁에 가담하면서 전세는 연합군측에 크게 유리해졌지만 그해 11월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독일이 단독으로 휴전하여 독일군은 모든 힘을 서쪽으로 쏟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워낙 막강한 미군의 지원을 업은 연합군의 공세에 독일군이 점차 밀리면서 패색이 짙어졌다.

1918년 2월 윌슨 대통령은 전후 세계 질서에 대한 그의 구상인 ‘14개조 원칙’을 발표했는데 그 조항은 다음과 같다.

1. 비밀 외교의 폐지

2. 공해(公海)의 자유

3. 경제장벽 철폐

4. 군비축소

5. 식민지 문제의 공정한 해결

6. 러시아 내정문제의 자주적 해결

7. 벨기에 영토회복

8. 알자스-로렌 지방 프랑스로 반환

9. 이탈리아 국경 재조정

10.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민족자결주의

11. 발칸제국 영토보전

12. 오스만 트루크 제국 민족자결주의

13. 폴란드의 독립

14. 국제연맹 창설

1918년 11월, 독일 항구 킬에서 수병들의 폭동으로 시작된 혁명은 황제 빌헬름 2세를 해외로 추방하고 임시정부가 세워져 11월 11일 연합국과 휴전조약에 서명함으로써 5년에 걸친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전쟁 막바지에 파리에서 전후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파리회의가 열렸는데 윌슨은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석해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윌슨이 파리평화회의에서 주장한 ‘승리 없는 평화’는 연합군이 내건 조건을 막지 못해 가혹한 베르사이유 조약이 체결되었고 독일 제국은 재무장 금지는 물론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랑스에 반환하고 32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전쟁보상금을 물게 되었다. 이러한 혹독한 보복은 결국 나치의 등장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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