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잡아가는 미국 (2)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0/06/14 [10:44]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0/06/14 [10:44]
자리잡아가는 미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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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일 편집위원장     ©
영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어설픈 신생국이 아니었다. 이런 자신감은 1817년 제임스 먼로가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절정에 달해 1823년 12월 그는 대서양에 새로운 선을 그어 놓고 “유럽은 더 이상 아메리카대륙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며 “이 선을 넘어 세력을 확장하려는 유럽국가가 나타나면 그 어떤 나라와도 싸울 것이다.”라는 ‘먼로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 발표를 들은 유럽인들은 비웃었지만 불과 50년도 지나지 않아 이 먼로 독트린은 미국제국주의의 시작임을 깨닫게 되었다. 먼로 독트린은 미국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남북아메리카대륙 전역에서 유럽세력을 거부하고 아메리카 주민의 자유 보장을 선언한 것으로 1845년 처음 적용되었다. 에스파니아가 오리건 지방을 합병하려하자 미국은 먼로 독트린을 앞세워 무력으로 에스파니아를 몰아냈으며 이 먼로 독트린은 오랜 세월을 두고 국제문제에 큰 혼란을 일으켜왔고, 미국의 팽창주의와도 연결되어 있어서 미국이 사실상 강대국으로 떠오른 1870년 이후 미국제국주의의 기본이 되었으며 오늘날 미국이 자처한 세계경찰의 역할도 먼로 독트린을 세계적으로 확대해석한 결과인 것이다. 

1814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거든 승리는 미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미국 독립선언서와 헌법에는 분명히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이를 누리는 이들은 지도층이나 부유층 등 일부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쟁을 치르고 이를 승리로 이끌도록 생명을 바쳐 싸운 이들은 일반 국민들로 그들 손으로 거둔 승리였던 만큼 그들의 권리도 더욱 커져가 민주주의는 점차 미국인들의 삶의 방식으로 뿌리를 내려 국민들은 귀족적인 사회체제에 거칠게 반발했다.

지금까지의 대통령들은 모두 버지니아 출신의 부유한 가문 출신이어서 미국 사회는 가난한 다수와 부유한 소수로 나뉘어져 있었다. 부유한 소수에게만 주어지던 투표권이 전차 획대되자 대중민주주의의 문이 열리게 되어 제7대 대통령에 앤드류 잭슨이 당선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앤드류 잭슨은 버지니아의 부유한 가문이 아닌 가난한 아일랜드계 개척민의 아들로 태어난 서민출신으로 13세 때 독립전쟁에 참전했고 교육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20세에 변호사가 되었고 1796년 테네시주에서 연방의회 의원에 당선되었지만 타협할 줄 모르는 독선적인 성격 때문에 정치에는 실패한 인물이었다. 

1812년 영국과의 전쟁이 터지자 민병대 장교로 지원하여 큰 공을 세워 1814년 정규군 장교로 승진했다. 1815년 초 잭슨은 뉴올리언스 전투의 신화를 창조하여 구국의 영웅으로 떠올라 드디어 1828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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