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탄생한 미국 (1)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0/05/25 [10:57]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0/05/25 [10:57]
새롭게 탄생한 미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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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일 편집위원장     © 주간시흥
오늘날의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지만 워싱턴의 취임으로 탄생한 초기 미국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대통령에 조지 워싱턴, 부통령에 존 애덤스 이 두 사람과 헌법 그리고 이들을 도와주는 보조인력 열 댓 명이 미국정부의 전부였으며 전쟁이 끝나 군대를 해산했기 때문에 군인이라고는 장교와 사병을 모두 합쳐 672명이 전부였고 그나마 해군은 한명도 없었다.

대통령과 부통령은 시급한 과제로 우선 종부를 조직해야만해서 초대 국무장관에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을 나라의 살림을 맡은 재무장관에는 알렉산더 해밀턴 그리고 전쟁부에는 헨리 녹스를 법무부에는 에드먼드 랜돌프를 각각 장관으로 임명했다. 독립전쟁이 끝나 미국인들은 자유와 독립을 얻었지만 미국의 경제는 수렁에 빠져 7년에 걸친 전쟁으로 국토는 황폐화되었고 산업은 잿더미가 되었기에 무엇보다도 경제정책이 시급한 실정이었다.

그래서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은 과감하고 강력한 경제정책을 시행할수밖에 없었는데 그 정책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국민에게 진 빚부터 갚기.
2. 모든 수입품에 관세부과하기.
3. 서부의 토지판매로 수입증대.
4. 중앙은행 설립.

영국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미국정부는 미국 국민들에게 무려 5천만 달러를 꾸어 썼는데 이 빚을 갚지 않고는 연방정부의 권위를 세울수 없었다. 그래서 이 빚을 갚기 위해 모든 수입품에 관세를 50% 부과하기로 하고 우선 위스키부터 적용하기로 하자 납세거부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연방정부는 이 사건을 군대를 동원하여 강력하게 제압하여 연방정부의 권위를 과시했다.

또한 해밀턴은 서부의 광활한 토지를 이주민에게 판돈으로 국가의 빚을 갚으려하자 북부보다는 빚이 적었던 남부가 크게 반대했고 연방은행을 설립하는 문제는 독자경제를 주장하는 분권주의자들의 반발을 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밀턴은 그의 정책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였고 반발도 더욱 격렬해져 미국의 정치계뿐만 아니라 국민들까지 남북으로 분열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미국의 정계는 알랙산더 해밀턴을 지지하는 세력과 토마스 제퍼슨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갈라져 토마스 제퍼슨은 자유주의자이며 반영주의자였고 분권주의자이자 민주주의 신봉자로 제퍼슨과 이를 지지하는 세력을 자유공화파라 불렀으며 해밀턴은 자본가들의 지지를 받는 강력한 중앙정부 지지파로 그는 귀족주의자였으며 민주주의에 비판적이어서 그들 스스로 연방주의자라 칭했으며 이들은 프랑스에서 루이 16세가 처형된 1793년을 전후로 완전히 두 파로 나뉘어 미국 양당정치의 기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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