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탄생 (1)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0/05/10 [11:05]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0/05/10 [11:05]
미국의 탄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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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 5월 10일 제2차 대륙회의에서 온건파와 과격파가 치열한 대립 끝에 조지 워싱턴을 지도자로 선정하고 전쟁을 결의했다. 이때까지도 미국은 결코 독립을 희망한 것이 아니라 충성스러운 왕의 신하인 영국인으로써 자신을 탄압하는 영국의회와 싸워 자신들의 진정한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으나 차츰 소수 과격파들이 미국의 독립문제를 전쟁의 이유로 들고 나섰다.

1776년 1월 갑자기 독립 으로 방향을 돌린 대륙회의는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를 만들기 위해 결의한 결의문인 독립선언서를 독립선언서 작성 5인위원회에 위임하여 당시 33살이던 토마스 제퍼슨이 주로 작성했다.

독립선언서의 첫 부분은 정부라는 공권력이 국민의 행복과 재산,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면 국민은 이에 저항하여 무너뜨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 부분은 영국 국왕 조지 3세를 비난하고 있었다.

독립선언서 초안은 1776년 6월 28일 의회에 제출하여 7월 4일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이 날은 그 후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은 시작되었지만 미국에게 크게 불리한 싸움이었다. 당시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 국가이며 경험 많고 잘 훈련된 정예군이 있었고 거대하고 강력한 재정을 갖춘 세계최강국인데 비해 미국은 영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 이외에는 유리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미국에게 가장 불리한 점은 훈련된 군사가 없다는 점이나 재정문제가 아니라 전쟁을 치러야할 미국인들이 전혀 단합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세금부과 반대로 시작하여 혁명을 지지한 미국인들이 3분의 1에 지나지 않았고 자신의 재산보호와 안전을 위해 영국의 통치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3분의 1 그리고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 3분의 1이나 되었다.

미국인들의 3분의 2가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전혀 준비가 안 된 3분의 1을 이끌고 싸워야 하는 전혀 승산이 없는 전쟁이었다.

당시 44세의 조지 워싱턴은 전쟁이 시작 되자마자 패전에 패전을 거듭하자 승산 없는 전쟁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전략을 바꿔 깊이 숨어 적과의 전투를 피하면서 시간을 끌어 본국과의 거리가 멀어 보급이 어려운 영국군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시간만 끌던 조지 워싱턴은 177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날 갑자기 델라웨어 강을 건너 트랜턴 요새를 공격하여 대승을 거둠으로 전쟁판을 크게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이 전쟁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듬해인 1777년에도 영국군의 압도적인 우세는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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