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 6·25 참전 유공자회 김정현 지회장

6월 보훈의 달 특별인터뷰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20/06/25 [15:19]
주간시흥 기사입력  2020/06/25 [15:19]
시흥시 6·25 참전 유공자회 김정현 지회장
6월 보훈의 달 특별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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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25일은 우리 민족의 뼈아픈 상처를 남겨준 6·25전쟁이 시작된 지 70년 주년을 맞는 날이다.

많은 세월이 흐르며 한민족에게 안겨졌던 커다란 상처들이 조금씩 치유되고 아물어가고 있으나 아직도 다시 되돌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특히 열악한 군사력으로도 국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애국 용사들이 흘린 피의 댓가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에게 경제의 풍요로움과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70여 년 전 당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겨우 살아남은 젊은 용사들은 이제 80세 후반에서 90세 이상의 나이로 지금도 6·25의 아픈 상처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주간시흥은 보훈의 달을 즈음하여 시흥시 6·25 참전 유공자회 김정현 지회장을 찾아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하는 심경들을 들어 본다.(편집자 주)

  

  © 주간시흥

 

▲ 최근 시흥시 6·25 참전 유공자회의 최근 활동 및 근황은.

 

▶ 올해 초 시흥시 6·25 참전 유공자회 지회장을 맡으면서 코로나 19가 발병되어 지회장으로 계획했던 사업들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하고 있던 보훈 교육 등도 손을 놓고 있는 상태지요.

 

특히 대부분의 회원들이 코로나에 약한 80대 중후반에서 90대를 넘긴 나이라서 밖에서의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고 코로나가19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답니요.(빨리 종식 되어야 할 터인데 걱정입니다.~~)

 

▲ 6·25전쟁 참여와 당시 역할 등을 소개해 주시길

 

▶ 6·25전쟁은 학도병으로 참여하게 됐으며 1950년도에 입대했으며 당시 나이는 16세로 중학교 2학년이었지요.

고향인 인천에서 12월 20일 파출소 순경이 ‘나라가 위태로우니 군대에 갔다 와야겠다.’라고 해 가겠다고 대답하고 바로 입대하게 됐지요.

 

바로 인천에서 대형 선박(LST)에 승선하고 집에는 연락도 할 수가 없는 상태에서 3일에 걸쳐 밥을 한 술도 먹지 못하고 부산에 도착해 제2훈련소에 입소하게 됐지요.

 

같이 입대한 전우들은 1주일의 훈련 후 전투에 투입되었는데 마침 스키부대에서 스키를 탈 수 있는 사람을 차출해 당시 스키를 잘 탔던 터라 대기병으로 남게 됐으나 한 달여 대기 후에 결국 기온이 오르면서 스키부대를 운용하지 않고 제주도 훈련소로 보내져 훈련병을 이송하는 보직을 받게 됐지요.

 

훈련이 끝난 훈련병들을 속초 등 접전지역 가까운 부대로 이송하는 일을 하게 됐으며 그래서 당시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지요.

 

▲ 참전 당시 어려웠던 기억들이라면.

 

▶ 당시 군 생활은 쉬운 것이 없었지요. 특히 훈련소에서 어려움이 많았는데 군복이 따로 없어 미제 코트를 입었으며 잠자리는 추운데도 학교 바닥에서 그대로 누워 취침하는 등 고생이었지요.

입대 후 2주 동안은 받아야 하는 훈련을 1주일 받고 총을 한 번도 쏴보지 못한 상태에서 전방에 배치를 받아 모두 바로 이동됐으며 아마 대부분 전사하셨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 군 생활은 언제까지 하셨으며 이후 생활들을 소개해 주시죠.

 

▶ 53년 휴전 후 부대 연대장이 장교로 지원하라는 제안을 받고 보병학교 지원시험에 합격하고 훈련을 마친 뒤 장교로 임관하게 됐지요. 이후 11년 동안 장교로 생활해 총 14년 동안 군 생활을 했습니다.

 

결혼 후 아이가 네 명이라서 군인으로는 먹고사는 문제가 쉽지 않아 전역해서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전역하게 됐으며 당시 잘 알고 있던 최명신 장군의 소개로 부산에 고무신 공장에 입사하였으며 일 년 만에 춘천에 고무신 도매상을 시작했고 이후 서울로 와서 밀가루 장사를 시작하게 됐으며 이어 제조업을 하게 됐지요.

 

▲ 6·25 참전 유공자회와의 인연은.

 

▶ 6·25전쟁에 참전한 사람으로 6·25 참전 유공자회 활동은 당연히 참여해야 하는 일이고 6·25 참전 유공자회가 처음 시작될 즈음 강동구에서 부지회장을 맡았으며 다시 용인으로 이사하여 용인에서도 부지회장을 맡았죠.

시화공단에서 조그만 제조업을 하고 있어 10여 년 전 시흥으로 옮겨왔으며 시흥에서는 시흥시 6·25 참전 유공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해 왔으며 올해 초 시흥시 6·25 참전 유공자회 지회장을 맡게 됐지요.

 

▲ 시흥시 6·25 참전 유공자회 지회장 취임 후 지회 활동 계획은.

 

▶ 추진하려는 사업으로는 몇 가지 공약 사업이 있지요.

 

첫 번째 회원복지 증진을 최우선으로 하고 복지 개선 사업을 추진하려 합니다. 시흥시에 우선 6·25 참전 유공자들에게 주어지는 유공자 지원 금액에 대해서 90세 이상은 5만 원씩을 더 지원해 줄 수 있도록 부탁할 예정입니다.

 

두 번째 추진 사업으로는 지역에 하나뿐인 보훈지정 종합병원인 센트럴병원과 보훈처와의 협력을 통해 서울 보훈병원 수준으로 진료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대부분 회원들이 나이가 많아 병원에서의 진료도 중요한 일입니다.

 

세 번째로는 6·25 기념비를 옥구공원으로 옮기는 일인데 일단 시흥시에서 보훈 공원을 위해 2천3백여 평의 땅을 확보해 놓은 상태이며 2025년까지 현충탑에 보훈 관련 기념비들을 옮기려는 계획으로 검토하고 있어 이에 맞춰갈 예정입니다.

이밖에도 지역에서 나라사랑 운동을 비롯해 나이 든 사람들이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사업들이 있다면 찾아서 하려 합니다.

 

  © 주간시흥

 

▲ 시흥시와 시민, 국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임병택 시장님을 시흥시는 시흥시 6·25 참전 유공자회를 비롯한 보훈단체에 각별하게 관심과 지원해 주셔서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 강점기에 경험했던 것처럼 나라 없는 국민은 서럽고 처량한 것입니다.

 

모든 시민들은 국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항상 애국의 정신을 바탕에 두고 강력한 힘을 갖은 나라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나가야 될 것입니다.

 

우리 시흥시 6·25 참전 유공자회 회원들은 항상 지역에 어른으로서 시민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모습을 보이며 시흥시 발전에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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