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과 이성계 (5)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09/09/07 [18:42]
주간시흥 기사입력  2009/09/07 [18:42]
정도전과 이성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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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일 편집위원장     © 주간시흥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뒤에 조선이라 국호를 정하고 유교지식인들에 의해 숭유억불정책과 중농주의 사대교린정책을 국가통치이념으로 삼았다. 그리고 공신을 책봉했는데 정권을 세우는 데 크게 공헌을 한 이방과, 이방원 같은 아들을 제외시켜 논란의 여지가 남았다.

이성계 자신은 무인이기에 정도전과 같은 문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정도전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꿈꾸는 재상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똑똑하고 이미 장성한 이성계의 첫째부인 자식들보다는 아직 나이도 어린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둘째부인인 신덕왕후의 아들을 세자로 삼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아니가 제일 어린 방석을 세자로 삼았다.

이성계 자신도 자신이 중앙정계 입문하여 출세를 한 것은 고려재상가의 딸이었던 둘째부인 힘이 절대적이었던 만큼 둘째부인을 사랑하여 막내인 방석을 세자로 삼는 것이 동의하고 말았다.

첫째왕후인 신의왕후는 조선을 세우기 1년 전인 1391년 세상을 떠났고 둘째부인인 신덕왕후는 조선을 세우자마자 명으로부터 현비로 책봉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런 신덕왕후가 조선을 건국한지 5년이 되는 해인 1396년 세상을 떠나자 태조는 그녀가 낳은 방석을 세자로 책봉함으로 그녀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했다.

태조 이성계는 국왕에 오르자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국정을 운영해나갔다. 그는 자신의 강력한 정치력으로 중앙집권화의 완성과 문치주의의 실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조의 위상이 높아가는 만큼 불만세력들의 불만도 커져만 갔다. 그들은 태조를 왕으로 만드는데 1등 공신이자 이성계의 첫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이방과, 이방원 등의 종친들이었고 다른 부류는 태조를 동북면에서부터 호종하면서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무장세력들로 종친들은 아버지를 왕으로 옹립하는데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개국공신 책봉과 세자책봉에서 제외된 데 불만을 품고 있었고 무장세력들은 태조가 일부 문신들만을 총애하며 지신들과 상의 없이 정국을 운영하는데 불만을 품고 있었다.

정도전 측이 보기에 이들은 단순한 불평분자가 아니었다. 이들은 각종 전투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사병을 소유한 무장집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들을 방치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리라는 점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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