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를 식물로 비유하자면, 비닐하우스 안에 식물처럼 자랐다고 하겠다. 사춘기 몸살도 개성 없이 지나서 그저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키우기 수월한 아이였다. 그 만큼 스스로 동기부여를 찾아낸다든지 하는 힘도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핑계 같지만 내 안에 숨어 있는 잠재력을 이끌어내 줄 ‘마중물’을 만나지는 못하고 성장한 셈이다. 그러다가 결혼과 함께 만난 ‘여성의 전화’는 그 누가 뭐라 해도 내 인생에 가장 강력하고 귀한 ‘마중물’이 되었다.
그 속에서 만난 수많은 선배 여성들, 그리고 그 안에서 부분적으로 내 인생과 맞물려 있는 수많은 내담자들… 이렇게 여성의 전화는 내 삶의 소중한 ‘마중물’이다.
여성의 전화는 내가 여성으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기쁨을 잃고 방황할 때, 흔들리지 않고 다시 엄마로, 아내로, 딸로, 인간으로 당당할 수 있게 해주었고, 또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이끌어 내 주었다.
안개 속 같았던 내 삶에 고정관념의 틀을 깨주었고, 편견과 선입견이 있음을 알게 해주었고, 인간에 대한 평등함을 일깨워 주었다. 안경 도수를 바꾸듯 그 때 그 때 변화하는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눈을 가지게도 해 주었다.
여성으로서 당당함과 유연함을 다시금 새겨 주었고, 동시에 내 삶과의 화해도 이끌어 내었다. 내 안에 숨어있던 거대한 잠재력을 끌어올려 준 ‘여성의 전화’가 내 삶의 ‘마중물’ 이였듯이 그 누군가에게 ‘마중물’이 되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더불어 그 속에서 만나는 많은 여성들에게 기꺼이 ‘마중물’로 쓰임 받는 것에 기쁨과 감사의 마음 또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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