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부의 난 (1)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09/05/11 [17:14]
주간시흥 기사입력  2009/05/11 [17:14]
정중부의 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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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국가를 세우는 데는 무장들의 힘이 절대적이지만 국가가 기틀을 잡아갈수록 무인들이란 그저 왕성을 호위한다든지 국경을 수비하는 일을 할 뿐이다. 그러는 가운데 무신들의 세력은 점차 약화되고 문신들이 권력을 잡아 그 권력을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 할 뿐만 아니라 그저 자신들을 호위하는 일을 하는데 그치는 무인들을 깔보기 마련이다.

고려도 왕건이 처음 나라를 세웠을 때에는 무신들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점차 나라가 안정되어 가면서 무신들은 홀대받고 문신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특히 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부식이 권력을 잡은 후 부터는 문신들이 무신들을 무시하는 태도가 더욱 심해져 결국 정중부를 중심으로 한 무신정권을 탄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정중부는 1105년(숙종 10) 해주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군인다운 체구를 지녔으며 얼굴이 희고 키도 7척이나 되는 장신이었다. 자신은 군인이 되길 원치 않았지만 해주 고을에서 군인으로 뽑혀 서울로 보내졌는데 당시 재상인 최홍재가 검열을 하다가 그의 용모를 보고 비범하게 여겨 궁궐을 지키는 금군으로 편입시켰다.

정중부는 자신의 체구 덕분에 국왕근위대로 편입된 셈이어서 이때부터 그는 권력 주변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건룡대정이 되었다. 대정은 무관으로 서울에서 근무하는 직이지만 품계가 없는 하급장교직이었다. 그 후로 계속 진급하여 국왕을 측근에서 모시는 장수의 지위까지 올라갔다.

그러던 어느해 섣달 그믐날 밤 나례(나쁜 귀신을 쫓는 의식)를 거행하면서 각종 잡기가 공연되었다. 의종이 이를 구경했기에 따라다니던 신하들 중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촛불로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사건이 일어났다.

화가난 정중부가 김돈중을 잡아 욕보이자 김부식은 화가나 국왕에게 보고하고 정중부를 매질하려 하자 의종이 이를 허락했으면서도 몰래 정중부를 도망시켰다. 이로써 정중부는 김돈중을 비롯한 문신들을 싫어하게 되었다.

정중부가 국왕의 비호를 받은 사건은 또 있었다. 당시 어사대가 국왕의 명령으로 궁궐의 북문을 막고 출입을 통제했는데 정중부가 마음대로 들락거리다가 어사대에 적발되었다.
 
그런데 이때도 의종이 왕의 명령을 어겼는데도 정중부를 처벌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당시 정중부가 왕의 사적인 일을 수행한 권위세력 이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 당시 김부식과 같은 문벌귀족들의 세력은 이미 국왕의 권력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서경을 중심으로 한 묘청의 난을 진압한 이후로는 개경의 문벌세력을 견제할 정치세력이 없었다.

그렇기에 의종은 자신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친위군과 환관세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중부도 의종의 친위세력 중 하나였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친위군이나 환관 등은 귀족세력이 아니었으므로 이들이 출세를 하려면 국왕과 가까워지는 방법뿐이었다. 정중부도 다른 사람들처럼 출세를 바랐을 것이고 국왕과 가까이 지낸던 그는 결국 무관의 최고위직인 상장군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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