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명절

주간시흥신문 | 기사입력 2008/09/17 [21:36]
주간시흥신문 기사입력  2008/09/17 [21:36]
한가위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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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일 편집위원장
기원전 57년 박혁거세가 여섯 촌락의 대표들에 의해 왕위에 올라 왕호를 거서간이라 했고 국호를 서라벌이라 칭했다. 그 후 3대왕인 유리 이사금은 서기 32년 여섯 촌락의 이름을 고치고 각 고을에 성씨를 내려주었다. 양산부(楊山部)는 양부(梁部)라하고 성은 이씨(李氏)로, 고허부(古墟部)는 사량부(沙梁部)라하고 성은 최씨(崔氏)로, 대수부(大樹部)는 점량부(漸梁部)라하고 성은 손씨(孫氏)로, 간진부(干珍部)는 본피부(本彼部)라하고 성은 정씨(鄭氏)로, 가리부(加利部)는 한기부(漢祈部)라하고 성은 배씨(裵氏)로, 명활부(明活部)는 습비부(習比部)라하고 성은 설씨(薛氏)로 하였다.


유리 이사금 왕은 이처럼 6부의 이름을 정한 다음 이를 둘로 나누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려 패를 나누어 편을 가르도록 한 다음 가을 7월 6일부터 매일 일찍 대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해 밤 열 시경에 파하였다. 그 후 8월 15일이 되어 그 성적의 많고 적음을 판별해 진 쪽에서 술과 음식을 마련해 이긴 쪽에 베풀었다 이 자리에는 노래와 춤과 온갖 오락이 다 벌어졌으니 이를 일러 가배(嘉俳)라고 하였다.


이 내용은 우리들이 명절이라고 하는 한가위 즉 추석에 대한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유리 이사금편에 나와 있는 기록이다. 이 내용에서 보듯이 추석명절은 거의 2천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명절로 처음에는 길쌈을 장려하기 위해 치루어진 행사였으나 차츰 세월이 흐르면서 길쌈보다는 가을 햇곡식과 햇과일을 차려놓고 조상을 기리는 행사로 발전한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듯이 한가위 명절은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도 모든 백성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명절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올해의 명절은 예전처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명절이 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슬프기까지 하다. 뛰어 오르는 유가와 치솟는 물가에 모두들 한숨만 쉬고 있는 상황이기에 명절이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올해의 추석은 휴일이 짧아 고향에 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망설이고 있다는 소식마저 들려와 고향에서 자식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나라가 활기차게 돌아가서 너도나도 양손에 가득 선물을 한 아름 안고 고향을 찾는 명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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