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아앙~”
딸이 집 문 앞에서 들어오면서부터 울음을 터트렸다. 딸은 엄마가 집에 없는 것을 알고 다급하게 내 방으로 들어왔다. 성난 듯한 얼굴에서 오늘 무엇인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밖에서 일어났다는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아빠! 오늘 수학학원에서 배운 것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다른 애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선생님도 나한테 뭐라고 했어요.” 딸의 급작스러운 감정 변화에 당황한 나머지 내 감정마저 동요됨을 느꼈다. 일단 울음과 분노 진정부터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어디서부터 발단이 되었는지 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 해결책을 이끌어 내야겠다고 자동사고가 되었다.
“어제 학교 친구를 데리고 와서 하루 종일 놀았던 게 문제였던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하니?”
“아빠하고는 대화가 안 돼. 아~~앙”
반사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난 후, 몇 초가 되지 않아서 나는 뭔가 잘 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뿔싸! 또 옛날 버릇, 내 질문 습관이 나와 버렸구나. 딸의 사건에 대한 해결책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딸의 마음을 공감해주는 언어를 썼어야 했는데…….’ 그렇게 공감에 대한 책을 읽고 환자의 불편에 공감하며 대화를 하리라 항상 다짐하였지만, 가까운 딸 앞에서는 이런 나의 평소 수련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오늘 수학학원에서 배운 것을 다 이해하고 잘 하고 싶었는데 하나도 이해가 안됐다니 매우 당황스럽고 힘들었었겠구나!” 만일 이런 말을 그 짧은 순간에 딸에게 던졌더라면 딸은 자신이 공감을 받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고, ‘어? 아빠하고도 제법 대화가 되는걸!’하고 생각하며 빠른 시간 안에 감정이 안정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더 깊은 대화로 이어져 종국에는 스스로 자신감과 용기를 다시 찾고 또 한 번 어려운 수학공부에 도전했을 것이다. 공감은 딸을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유연하고 침착하게, 감정이 아닌 이성적으로 대처할 줄 알게 하며, 반복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자기성장을 위한 채찍질도 마다지 않게 할 것이다.
■ 문제해결이 아니라 공감하라
공감이란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것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나 역시 상대방의 말에 대한 공감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님을 느낀다. 특히 상대가 여자라면 더욱 그렇고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아내, 딸)이라면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대화하는 느낌마저 들 때도 있다. 가족 간의 대화는 일단 대화가 안되는 게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이다.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대화도 안 되고 이해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나님이 구조적으로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의 인지와 반응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만들어 놓으셨다. 그러나 어떡하랴? 어찌됐든 인생의 절반을 함께 살아가야하는 숙명이라면 그곳에는 풍요롭고 서로를 기운 나게 하는 상생의 대화가 분명 존재할지도 모른다. ‘남의 편인 남편’ ‘안 해’가 주특기인 ‘아내’, ‘아이~씨~’하고 불평뿐인 ‘아이’란 이름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주는 삶의 의미와 연결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외국어 공부에 왕도가 없듯이 대화기술은 맞고 품는 암기과목이다. 끊임없이 공감의 단어, 문장을 외우고 현장에서 조금씩 적용하며 시행착오를 겪다보면 분명 가족이나 직장에서 나의 위치는 외롭지도 불공평하지만도 않는, 아직은 의미 있고 살만한 세상이라고 느끼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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