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을 보내며...

원돈스님 - 흥부네 책놀이터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6/05/16 [15:55]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6/05/16 [15:55]
도반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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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시흥                          원돈스님

오랜 도반이 많이 아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갓 서른에 몹쓸 병을 앓고 잘 이겨내는가 싶더니 손을 쓸 수 없는 지경까지 혼자서 견뎌내고 있었다. 오로지 정진만 하면서...


몇 푼 안 되는 통장의 잔고마저 어려운 이들에게 회향했다니 참으로 수행자다운 모습이다.


함께 수학하던 시절 스무 살에 그가 문득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외출할 때는 항상 방을 정리해요.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요.’ 그렇다고 그가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성격의 사람은 아니었다. 맑은 심성을 지닌 그는 화내는 모습을 본 이가 없고 또 언제나 같은 톤의 목소리로 침착했으며 밝았다.


호스피스병동에 있는 동안 의사는 한 달 후를 이야기할 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 이틀 후에 갈 거 같아요. 며칠만 더 고생해줘요.’ 그는 정말로 며칠 후 먼 여행을 떠났다.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가서 그의 곁을 지켰다. 마지막 숨을 지켜본다는 건 큰 공부였다. 나는 여기 그는 저만치 손닿을 수 없는 무엇이 우리를 경계 짓고 있었다. 아쉬움은 있어도 안타깝지는 않은 자리였다. 이렇게 가까이서 삶과 죽음 그 경계의 시간에 그와 함께 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임종의 순간에 도반들이 한 마디씩 한다.


귀한 집 아들로 태어나서 하고 싶은 공부 실컷 하며 살아요. 나무아미타불
이제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야. 잘 가요. 나무아미타불
어려운 결정 혼자하지 않아도 되는 외롭지 않은 가정에 태어나요. 나무아미타불
빛을 따라서 정신 잘 챙기면서 가요. 나무아미타불
부모님 사랑 충분히 받고 다시 부처님 제자로 만납시다. 나무아미타불


마치 출발선에 있는 선수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듯 도반들의 응원을 받으며 새로운 세상을 향해 그는 그렇게 떠나갔다.


45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그는 참 멋지게 살다간다. 절정의 순간에 ‘툭’하고 떨구는 저 목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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