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간시흥
교정재생한의원장.
한의학박사 오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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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후원이사로 몸 담고 있는 한 이주민 다문화센터 대표가 한의원에 긴급 의료지원을 요청해왔다.
대상자는 ‘쿠에시’(가명)란 가나의 한 이주노동자였다.
임금체불로 사업주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쿠에시는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보호기관에 하소연했다.
이에 사업주는 임금체불을 지급하는 대신 진정을 취하하라는 서명을 요구했다. 임금은 돌려 받았지만 서명을 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낀 쿠에시가 서명을 거부하자 사업주는 그를 도리어 절도죄로 경찰에 고소를 해버렸다.
경찰에 연행되는 과정에서 쿠에시의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아마도 연행과정에서 도주의 위험 때문에 경찰이 그리했으리라 짐작된다. 졸지에 쿠에시는 절도범이 되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연행은 경찰차가 아닌 전철로 경찰서까지 이동되었다.
왜 경찰차가 아닌 전철로 이동되었는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전철로 수갑이 채워져 이동되는 과정은 죽고싶을 만큼의 수치스러움 그 자체였다. 생에 처음 겪는 체포 연행 과정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경찰에서 조사받는 4시간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는 연행중에 발생한 저항 과정 중 발생한 충격으로 몸이 아프다고 의학처치를 요구했지만 묵살되었다. 나중에 한의원에 입원시켜 자세히 몸을 관찰해보니 엉덩이, 허리, 무릎관절, 팔꿈치에 알코올 솜이 조금만 닿아도 따가와 몸을 비틀 정도로 찰과상이 나 있었고 통증으로 한 자세를 오래 취하기가 불편하였다. 더구나 정신적 공황은 잠을 설 칠 정도로 더욱 심각하였다.
충격적인 연행 장면들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머리에 떠올랐다. 고통스럽고 충격적인 경험 후 사건 장면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이른바 ‘플래시백’ 현상이었다. 이에 몸 치료뿐 아니라, 급성스트레스 증후 관리와 외상 후 스트레스로 진행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심리적 안정치료가 필요한 것을 직감하였다.
■ 미술심리치료를 통한 마음다루기
미술심리치료를 진행해보니 쿠에시가 느끼기에 이 모든 사건은 ‘자신이 검다’는 편견에서 오는 거절감이라 생각이 들었다. 분노, 자기비하, 두려움, 상실감, 자괴감이 쿠에시의 마음을 흔들어댔다. 한국에 오기 전만해도 '검은 피부(Black Skin)'는 자신에게 있어서 행복, 웃음, 자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검정’이란 절망, 두려움, 수치의 색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꿈을 이루어줄 희망의 나라 한국이 절망의 나라로 빛을 바래 버린 순간이었다. 쿠에시는 스스로 마음을 조절할만한 여유도 힘도 없었다. 밤마다 사건장면 회상과 함께 밀려오는 두려움, 불안, 외로움이 제발 꿈이었으면 했다. 입원 후 며칠동안이나 잠을 청해 보았지만 불현듯 깜짝깜짝 놀라 깊은 잠을 자기도 힘들었다.
불안, 외로움, 억울함에 분노가 치미를때면 답답한 마음에 말이 통하는 외국인 노동자 동료들에게 밤새워 전화통화를 해대 보았다. 그러나 한계가 있어 보였다. 쿠에시에게는 심리적 도움이 필요하였다. 자신의 인생에서 원치 않게 갑작스럽게 닥친 48시간의 끔찍한 침습적 악몽을 초기에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쿠에시의 인생의 질이 결정되어 질 것이다.
사건을 흘려보내고 수용하고 거기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되찾는 심리치료가 절실하여 나는 쿠에시에게 마음의 방을 그려보게 하였다. 그리고 거기에 색을 칠해보라고 하였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적고 색을 칠하는 과정에서 쿠에시는 빠르게 심리적 안정을 취해 나갔다. 거기에 긍정적인 의미까지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에서 얼굴은 한결 밝아졌다. 다행스럽게도 잘 쉬고 잘 먹고 편안하게 입원치료까지 받고 많이 회복되어 퇴원한 쿠에시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힘들면 혼자 견디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주변에 도움을 청해보는 것도 마음을 다루는 기술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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