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아프리카

원돈스님 - 흥부네 책놀이터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6/03/21 [10:30]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6/03/21 [10:30]
추운 아프리카
원돈스님 - 흥부네 책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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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시흥    원돈스님-흥부네 책놀이터

  내 방 한구석에 양말 여섯 개가 두 줄로 나란히 누웠다.

 
어릴적 집에서는 아버지가 제일 먼저 씻으시고 형제들이 차례로 씻고 헹구기를 순서대로 했다. 물이 귀해서 그랬을 것이다. 물을 다루기도 소중하게 한 것 같다.


절집에서는 상복 하복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머리부터 씻어 내려와서 마지막에 발을 씻고는  양말을 빨도록 배운다. 세수하고 발 닦은 물을 모아서 자신의 양말을 세탁하는 것이다.


흐르는 물도 아껴 쓰라는 말이 절집에는 남아 있다. 심지어 이생에 내가 사용한 물을 저승에 가서 다 마셔야 한다는 말로 겁을 주기도 한다. 새스님 때는 그 말이 무서워서 누가 보든 안보든 물을 아껴썼다. 해서 밤마다 스님네 방 한구석에는 양말이 한 켤레씩 가지런히 누워있다.


우리 절은 지난 해 부터 물 사정이 좋지 않다. 요사채는 초파일 이후로 법당채는 시월부터 지하수가 나오질 않는다. 가물기도 했지만 인근에 군부대에서 여름에 관정을 팠고, 가까이에 골프장이 새로 생긴 탓도 있는 것 같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이치로 볼 때 그 중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우리 절은 어지간히 크고 깊은 관정이 아니고는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한 달에 두 번 급수차로 물을 받고, 불자님들이 손에손 들고 오시는 생수로 생활하고 있다.


그렇게 6개월 남짓 살다보니 세수는 저녁에 한 번만하고, 양치는 물 한 컵으로도 충분하고, 요리도 기름을 적게 사용하니 더 좋고, 세탁기는 필요가 없어진지 오래다. 비교도 안 되겠지만 식수 문제가 심각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불평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살기로 하고나니 저절로 검소해지고 마음도 편안하다. 물에 고마워하고 이 만큼에 감사하며 살다보면 이 문제도 끝이 있을 것이다.


양말을 모아서 두 번 쯤 빨면 급수차가 온다. 내일이다. 여긴 추운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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