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로딘은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의 한 사람일 뿐 만 아니라 화학자. 여성교육 장려자로서 러시아 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아시아계인 타타르의 피를 이어받은 귀족의 사생아로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음악에 동양적 요소가 많이 담겨 있는 것은 아버지가 동양인의 혈통을 이은 사람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보로딘의 음악적 재능은 일찍부터 나타나 9세 때 플루트와 첼로를 배웠다. 특히 첼로는 일생을 통해 사랑했던 악기로서 그로 하여금 ‘5인조’중 유일하게 후세에 남길 가치가 있는 현악4중주, 6중주 등 실내악을 쓰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청년 시절 그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유학, 화학공부를 했다. 그곳에서 폐결핵 요양 차 와있던 러시아의 여류 피아니스트 에카테리나 포로토포포바를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병약했던 터라 아기까지 못 낳는 아내 였으므로 행복한 결혼 생활 이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의 명 지휘자 바인가르트너는 말했다. “러이사와 러시아인의 국민성을 알려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과 보로딘의 교향곡 제2번만 들으면 된다.“ 이 말에도 알 수 있듯이 보로딘의 작품들은 숫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화학 교수이기도 했던 보로딘은 강의 시간에 여담 삼아 자기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아시아계 혈통을 가진 아버지와 유럽계 여성인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따라서 정식 출생신고를 할 수 없이 아지버의 농노의 호적에 실렸고 그 농노의 성을 따랐다. 현재의 신분은 군인에, 음악가에 ,화학교수이다. 자, 이 복잡한 화합물질의 분자식을 제대로 표기할 자신있는 학생은 손들어보라.“ 원소의 주기율표를 발견한 러시아의 유명한 화학자 멘델레프와 한 살 연상인 보로딘은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유학시적 알게 되어 평생 친숙하게 지냈다. 두 사람 다 나이 50세를 바라보던 어느 날 멘델레프는 부럽다는 표정으로 보로딘에게 말했다. “난 평생 매달려보아야 화학자라는 신분 하나뿐인데, 도대체 자네는 직함이 몇 가지 인가? 군인에, 과학자에, 음악에가에 화가까지 되니.......” “화가라니? 난 그림 솜씨는 형편없다네.” 보로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멘델레프는 정색을 하고 반박했다. “무슨 소리야? 자네가 얼마 전에 발표한 교향적 스케치 <중앙 아시아의 초원에서>는 그림이 아니고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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