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일상이라는 게 남들이 보기에는 한가롭고 느릿하고 늘 여유로울 것만 같아도 나에겐 아직 먼 이야기다. 일주일이 훌쩍 지나가버리고 한 달도 금방이다.
일과를 마치고 가끔씩 운동 삼아 강아지들과 함께 108계단을 오르내리며 한가로운 시간을 갖는다. 계단 위 산신각에는 각자의 소원을 적어서 묶어놓은 리본들이 빼곡하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 가슴 속에 간직한 원하는 바를 꾹꾹 눌러 적은 소원리본. 그 간절함에 나의 마음도 보태본다.
-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어요.
- 건강하게 전역하게 해주세요.
- 좋은 인연 만나게 해주세요.
- 엄마 아빠랑 함께 살게 해주세요.
- 진실을 꼭 밝혀줄게. 잊지 않을게.
- 아빠한테 미치게 가고 싶어요.
- 눈이 다시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회사가 고비를 잘 넘겨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기를 ...
- 엄마 아빠 싸우지 않게 해주세요.
- 할아버지 편안한 곳에 가게 해주세요.
- 최신 폰 갖고 싶어요.
소박하지만 제일 중요한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세월호 유가족의 절절한 심정, 직장인의 불안한 마음,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하는 어린아이의 간절함, 제대를 앞 둔 어느 군인의 소망, 최신 폰을 갖고 싶은 중학생의 귀여운 바람까지 리본에 정성스레 적혀있다.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정신을 차려보니 달력이 두 장 남았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이에 따라 느끼는 세월의 속도가 다르다고 하는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남은 두 달 동안 저 간절하고 착한 바램들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함께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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