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

원돈 스님 : 흥부네 책놀이터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6/06/24 [15:27]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6/06/24 [15:27]
배낭여행
원돈 스님 : 흥부네 책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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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시흥

삼십대 중반에 다시 인도를 찾았다. 대학 졸업여행으로 다녀온 지 꼭 십 년 만에 혼자서 배낭 하나 짊어지고 말이다. 성지를 반드시 가고자하는 계획도 없이 그냥 인도라는 이름에 이끌려 가이드북을 의지해서 짐을 챙겼다.


 그 때 나의 고민은 서른을 살아가는 내 모습이 탐탁지 않았으며 이렇게 살다가는 마흔에도 여전히 불안한 어른일 것 같은 염려도 한 몫 했다. 어차피 계획대로 되어가는 인생이 아니라면 무계획 속에서 의미 있는 만남도 좋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델리에 발을 디뎠다.


 그곳에서 원불교 교무님을 만나서 가난한 처지인지라 방값을 아끼려고 룸메이트가 되는 것에 둘 다 이의가 없었다. 며칠을 함께 여행하던 중에 법륜스님이 이끄는 JTS봉사단과 합류해서 일주일 동안 집도 짓고, 길도 내고, 학교도 짓는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이른 아침을 먹고, 논인지 밭인지 모를 척박한 땅에 구덩이를 파고, 물을 길어다 부으면 오전 일과는 끝이다. 점심을 먹고는 대부분의 인도사람들처럼 낮잠을 자고 변변한 도구도 없이 다시 그곳으로 간다. 가서는 종아리를 걷어 부치고 질척해진 땅에 지푸라기를 썰어 넣은 다음 서너 명이 한 조가 되어 발로 한참을 꾹꾹 밟는다. 짚과 고루 섞인 흙으로 주먹만한 덩어리를 만들고 집을 지을 장소까지 길게 줄을 서서 릴레이로 흙덩이를 나른다. 열 평도 안 되어 보이는 땅에 ㄷ자로 흙덩이를 던지듯 쳐발라서 내 키만큼 올리고 함석 두세 장을 얹으면 집 한 채 완성이다. 인도말을 할 줄 알고 손놀림도 익숙한 봉사자가 구석에 솥을 걸 아궁이를 만들자 어디선가 집주인이 나타났다.


 우리가 그날 지은 집은 다리가 불편한 누이가 어린 남동생과 쇠약한 아버지를 모시고 살 집이었다. 가족들 모두 흡족한지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누이가 몇 번을 고맙다는 인사를 하더니 휴식 시간에 내 손을 잡아끈다. 주머니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꺼내어 정성스레 손톱에 빠알간 칠을 해준다. 앗!!! 메니큐어. 태어나 처음으로 내 손톱이 호강을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소녀의 성의를 뿌리칠 수도 없어서 못 이기는 척 두 손을 다 맡겼다.


 이렇게 문득 떠난 나홀로 배낭여행. 계획을 짜느라 분주하지도 않고, 동행이 없으니 좀 외롭기는 해도 서로 눈치 볼 일이 없고, 별도의 일정이 없으니 맘에 드는 곳에서 푸욱 쉬기도 하면서 한 달 동안을 그렇게 다녔다.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내 추억 속에 살고 있는 그들의 안부가 가끔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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