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일자리의 대부 김영준 관장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09/10/05 [17:42]
주간시흥 기사입력  2009/10/05 [17:42]
노인 일자리의 대부 김영준 관장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 시흥시니어클럽관장 김 영 준     © 주간시흥
가을비가 쓸쓸히 흩날리는 아침.
노인 일자리의 대부 김영준 관장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잔뜩 찌푸린 날씨와 아랑곳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의 풍경은 지금 시니어클럽의 현주소가 어디인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 누가 ‘골방의 늙은이’라는 낡은 생각을 풍부한 경험의 인적자원인 ‘노인인력’으로 바라봤을까. 생각의 전환이 가져온 엄청난 파장은 이제 ‘실버사회적기업’의 미래가 되었다.
 
▲ 섬 아이가 품었던 꿈
겨울이면, 눈이 내려 온통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울릉도에서 김 관장은 태어났다. 섬에서 가장 높은 성인봉은 4월이 되어도 눈이 녹지 않아 겨울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맑은 날이면,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육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키웠다.
언젠가는 이 섬을 떠나 육지에 가서 늘 꿈꾸던 일을 하리라 마음먹곤 하던 그에게 섬은 너무도 고독했다.
열여섯 살.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그는 고등학교를 육지에서 다니려고 목선에 몸을 실었다.
울릉도에서 포항까지 꼬박 이틀의 먼 뱃길을 떠나올 때 두려움 보다는 설렘이 더 했다.
그는 꿈을 향해 그렇게 섬을 떠나왔다.
중학시절. 담임선생님은 반질반질 윤이 나는 그의 눈빛 속에서 어쩜 많은 가능성을 보았을 지도 모른다.
대구로 전근가시며 내민 주소 적힌 종이 한 장이 그를 새로운 세계로 초대했다.
 
▲ 활빈교회에서 빈민운동을 시작
마음 속에 늘 자라면서 키워온 신앙심은 언제나 혼자인 그에게 많은 힘이 되었다. 신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서울로 상경한 뒤 청계천의 가난한 활빈교회 전도사 일을 도맡아 하며 신학을 공부했다.
짧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청계천이 철거 된 후 화성으로 옮겨왔다.
남양만의 새 땅에 전 제정구의원과 함께 집단 이주해 지역공동체의 삶을 시작 했다. 하지만 삶이 뜻대로 만 되지 않음을 그 시절 많은 고난 속에서 깨닫고 또 깨달았다.
어느 여름 일요일. 모내기가 한창인 날에 가뜩이나 바쁜 사람들을 붙들어 놓고 예배를 보고 있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뚜렷한 믿음도 없이 사명에만 불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회의를 느꼈다. 다시 처음부터 평신도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1980년 1월 시흥으로 와서 집단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생활공동체, 문화공동체, 복지공동체는 형태는 결국 지역사회에 정치공동체로 발전했다.
작은자리복지관을 시작하면서 복지법인 이사장으로 취임, 정왕복지관관장, 작은자리 자활후견기관장으로 전국협회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알 수 없는 힘이 그를 이곳으로 인도한 셈이 되었다. 복지문제에 관여하다보니 자활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 자활을 고민하다. 노인을 발견하다
정왕복지관으로 온 2000년대 노인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노인문제의 심각성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있었다.
부모 된 이들의 자기희생은 변하지 않고, 노인들은 생계형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착안한 ‘시니어클럽’은 노인일자리의 첫 단추를 채우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전국에 100여개의 시니어클럽이 활성화되어 있다.
그가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자활만이 살길임을 깨닫는 순간에 노인의 자활은 그 연장선상에 있게 됐다.
“가난한 사람도 희망을 가질 권리가 있고, 가난하게 살 권리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얼굴에 굳은 결의가 보인다.
가난하게 살 권리란 그동안 물질의 풍요가 가져온 지구의 재앙에 대하여 생명을 파괴하는 물질에 대항해 가난하게 살면서 행복지수를 높이는 일이다.
“없다는 것은 불편할 수 있지만 마음을 비웠다는 점에선 너무도 가볍다 가난한 사람들의 높은 행복지수는 당연한 결과다.”
육지를 동경하던 섬 소년은 ‘빈민운동과 농민운동의 투쟁으로 얼룩진 젊은 시절을 지나 이제 자활을 실현하는데 온 힘을 쏟는 노년의 삶으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시니어클럽은 단순히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기관이 아니라 사회적 소외감과 경제적 어려움 등 노인들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창구가 될 것”이라며 “향후 5년간 1만7천여 개의 노인맞춤형 일자리를 창출, 노인들의 사회적 참여를 이끌어 낼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결국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다는 것은 이전 사회의 노인에 대한 인식을 깨뜨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노인을 바라볼 때 비로소 정부의 노인 정책도 바로 서게 될 것이다.”
고령화 사회를 염려해 앞서 선봉의 길에 우뚝 선 김 관장의 자활의 깃발은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 김영준 관장 프로필
- 1995. 한국도시연구소 이사(現)
- 1996. 복지법인 복음자리 이사(現)
- 1998. 실업극복시흥시민연대 상임
    대표(現)
- 2005.9. 민주화운동공제회 이사(現)
    시흥시니어클럽 관장(現)
- 2006. 시흥시복지협의체부회장(現)
- 2007. 사단법인일촌공동체이사(現)
   사단복지법인주거복지재단이사(現)
- 2008. 한국시니어클럽협회이사(現)
   한국시니어클럽협회경인지회장(現)
   한국주거복지협의회 이사장(現)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간시흥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