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선조들은 추수를 끝내고 한겨울 농한기(農閑期)가 되면 초당에 호롱불을 밝혀놓고 짚신을 삼거나 새끼 꼬는 일로 긴 겨울밤을 지냈다.
조그만 사랑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새끼를 꼬며 그간 힘들었던 농사일이나 품앗이 하던 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누구 집에 소가 새끼를 낳았다더라 하는 소소한 이야기보따리를 주섬주섬 풀어놓으며 새끼를 꼬고 또 꼬았다. 지금처럼 나일론 끈이 전무한 그 시절 새끼줄은 농사에서나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었다.
시대가 변해 가면서 생활도 변하여 이제는 더 이상 새끼줄을 꼬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땅에 묻어놔도 썩지 않고 100년은 거뜬히 견디는 나일론 끈이 새끼줄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세상에서 아직도 옛것을 고집하며, 그것을 계승해 나가는 일이야 말로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이 되는 일로 달려갈 때도 곁눈질 하지 않고 묵묵히 옛것을 지켜내고 있는 이가 있다. (사)짚풀문화연구회 시흥지부와 짚풀공예댕댕이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以亭 김이랑 선생은 10여년이 넘게 짚풀공예에만 온전히 매달려 왔다.
세인들이 보기엔 무모해 보일지도 모르는 짚풀공예를 대하는 그의 생각은 남다르다.
비록 편리한 세상이 되긴 했으나 그런 편리함 때문에 오히려 지구는 몸살을 앓게 되었고, 세상은 더욱 황폐해져 갔으며, 급기야 전 세계는 다가오는 재앙 속에 놓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뒤늦게 우리는 환경을 보전하기에 급급해져 불편함을 감당하면서도 오래도록 지구에 살고 싶어 하는 세대가 되었다. 결국 그가 해오던 짚풀공예는 이제 보니 환경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는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짚풀공예라는 것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여인네의 가녀리고 야들야들한 손으로 거칠 디 거친 짚을 만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처음 볏짚에 쓸려 얼얼하던 손에 피가 맺히고 지문이 없어지듯 닳아서 생손을 앓는 경험을 수없이 하고 나서야 제법 볏짚을 대하는데 두려움이 없어진다 한다. 어디 그뿐이랴.
한자리에 오래도록 구부리고 앉아 작업을 하다보면, 어깨고 팔이고 안 아픈 곳이 없다.
이렇게 힘든 짚풀공예는 이제 그의 삶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이런 그의 노력들이 최근에야 세인의 관심 속에 놓이며 2008년도에 국가기능계승자로 인정받았다. 그의 스승 미성 임채지 선생으로부터 사사 받아 오늘날 까지도 짚풀공예의 계승을 위해 전념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가 가야할 길은 너무나 멀고 험하다. 짚풀공예가 전통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데도 고작해야 일 년에 한두 번 전시나 축제에 등장하는 이벤트로써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소망이 있다. 짚풀공예가 시흥시만이 계승해 나가는 독특한 전통문화로 자리 잡아 시흥시의 관광문화 상품이 되게 하는 것과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짚풀공예를 유용하게 쓸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함께 공방에서 작업하는 김이순(대야동)씨는 “작업을 하면 할수록 부모님들이 짚풀로 망태와 멍석, 짚신, 도롱이를 만드시던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아련한 어린시절의 향수와 함께 만들어진 소품 하나하나는 너무나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져 자식같이 느껴진다.” 고 한다.
사실 작고 보잘 것 없이 만들어졌다 해도 그것을 만들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보낸 자신을 생각하면, 귀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는 게 공방식구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가끔 이웃들에게 보여주면 서로 가져가려해서 이제 맘껏 자랑도 못할 지경이라고.
짚으로 새끼를 꼬아 양팔을 벌린 길이를 한발이라 하는데 하루 종일 꼬아야 100발정도 된다. 이것을 가지고 보통 멍석하나를 만드는데 꼬박 3일정도가 걸린다. 다 만들고 보면 어찌나 뿌듯한지 보물 아닌 보물이 된다고. 짚풀공예댕댕이 공방에는 10여명의 회원들이 들락거리며 거친 지푸라기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대개 짧게는 3년에서 10년 이상의 고수들인셈.
김미숙(하상동)씨는 처음 한지공예를 하다가 짚풀의 무한한 매력에 빠져 세월 가는 걸 잊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회원들 모두 얼굴들이 너무나 맑다. 아마도 자연에서 거두어온 재료로 자연을 닮은 작품을 만들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세대가 바뀌어도 전통의 맥을 이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까봐 걱정이라는 김지부장은 앞으로 시 차원에서의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만이 짚풀공예를 시민 모두가 향유하게 할 수 있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겨울밤이 깊어간다. 지금쯤 그곳에는 형광등 불빛아래 밤늦도록 새끼를 꼬아 희망을 낳고 있는 산고의 순간이 외로이 진행되고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