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일야방성대학 (사진=고광률 작가 제공) © 주간시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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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흥=주간시흥] 우리 현대사를 유기적 연결고리로 꿰뚫으면서 통시적으로 구현해 낸 첫 번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오래된 뿔』의 고광률 작가가 신작 『시일야방성대학』을 나무옆의자에서 출간했다. 권력과 자본의 야만에 잠식당한 사회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그의 소설들은 밀도 높은 언어와 단단한 구성, 확고한 리얼리티로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고광률 작가가 이번에 주목한 문제는 한국 사회 최고 기득권층인 교수 집단의 모략과 이전투구. 작가 스스로가 30년 동안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고민하고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투사와 반투사의 장치로 그려진 작품이다.
일광학원 재단의 일광대학교는 교육부의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가선정되어 부실 판정을 받게 된다. 이에 학생들은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급기야 총장실을 점거하는 사태에 이르자, 총장은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관계자들을 불러들인다. 이 소설은 현 총장 모도일과 전 총장인 주시열, 그리고 직원 출신 비정년 교원 공민구를 중심으로 얽힌 이들의 미로와도 같은 이해관계도인 동시에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욕망을 들여다보는 현미경이라 할 수 있다. 권력 다툼과 특권 의식, 이권을 위해 양심과 인격과 자존심마저 남김없이 내던지는 교수라는 이름의 인간 군상이 보여 주는 진실을 위장한 거짓투성이 성채를 만날 수 있다.
대체 이 대학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일광대학교 모도일 총장은 일광학원 설립자 모준오의 외아들로서 하버드 의대 졸업 후 귀국하여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가 2대 총장에 추대되어 18년째 절대 권력을 행세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서 사립학교법이 사립학교 소유주들에게 유리하도록 개정되었다. 이전에는 4년 더하기 4년, 즉 8년까지 중임을 하면, 한 텀(term)을 쉬어야만 연임이 가능했던 총장 임기를 쉼 없이 이어서 할 수 있도록 했다.
모 총장은 등록금, 재단 유입금 등등 재원을 학생의 복리나 학습권을 위해 사용하는 것에 우선하여 제2 캠퍼스를 핑계로 부동산을 늘려가는 데에 열을 올린다. 교수들에게는 성과연봉제라는 프레임으로 연봉은 해마다 인상되기는커녕 해마다 깎고 있으며, 학교 재정에 도움이 되는 편입 정원을 늘려가고 있다.
1대 총장이었던 주시열은, 일광학원 설립자 모준오가 세금 절약을 위해 고민할 때에 학교 설립을 추천하고 도움으로써 일광학원 재단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 주시열은 자신이 일광학원 재단에 무형의 지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언젠가 그 대가를 돌려받을 날을 고대하고 있다. 그는 재단 설립 이후 36년간의 모든 회계와 부정한 자금 흐름에 관한 서류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직원 출신 비정년 교원인 공민구는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지켜보는 동안 학교로부터 내사를 받고 있다. 일광대학교 『35년사』 집필 및 편집위원이었을 뿐인 그에게 예산 과다 책정과 집행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다. 학교에서 점거 농성이 벌어지는 동안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에도 그는 학교로부터 갖은 압력을 받게 된다.
대학교수 사회의 암투와 질투, 모략, 계략, 지질한 욕망
모도일 총장은 그의 권위와 권력에 힘입어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에 둘러싸여 누구에게도 잘못을 지적당하지 않음으로써 안온하게 자신을 자리를 누리고 있다. 이에 반해 주시열은 정년퇴직을 1년여 앞두고 아무런 보장 없이 일광학원이라는 커다란 그늘을 벗어나게 된 현실에 대해 깊은 회한과 함께 분노 어린 불안을 느낀다. 이에 36년간 간직했던 일광학원 운영자금에 대한 서류들로 폭로하려 하지만 되레 모 총장 측이 횡령으로 고소함으로써 체포당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총장 자리에 올라 영속하려던 주시열의 욕망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모교 출신 1호 교수인 윤우는 30년 전 편입 반대 시위의 주동자였지만, 현재에 와서는 학생들이 벌이는 편입 반대 시위에 반대하고 있다. 모도일 총장의 큰누나는 결혼하는 남자들마다 교수로 임용되도록 한다. 비서실장을 위시한 총장의 주변 인물들은 총장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모략하고, 움직이는 와중에도 자신을 위한 패는 숨겨 두는 비열한 면면을 드러내고 있다.
『시일야방성대학』은 최고의 지성이라 일컫는 대학교수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암투와 질투, 모략, 계략, 지질한 욕망에 사로잡힌 모습들을 포착하고 있다. 이는 초등학교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그 알량한 권력을 좇으며 그에 기대어 벌어지던 가슴 서늘한 횡포들을 기억케 한다.
한편, 고광률 작가는 1961년 청주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호서문학』에 단편 「어둠의 끝」을, 1991년 17인 신작소설집 『아버지의 나라』(실천문학사)에 단편 「통증」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소설집 『어떤 복수』 『조광조, 너 그럴 줄 알았지』 『복만이의 화물차』, 장편소설 『오래된 뿔』(전2권)이 있다. 2012년 호서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