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잠들어 있는 계절이다. 지난해의 흔적을 모두 떨어트리고 깊은 잠에 빠져있다. 흔히 휴면에 든다고 이야기 한다. 조용할 것만 같지만 그 속에는 또 다른 생명력을 품고 있다. 앙상할 것만 같은 가지 사이사이 품고 있는 겨울눈에는 봄이면 싹 틔울 꽃과 잎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잎을 떨구는 낙엽수들이 주로 분포하는 중부지방 숲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겨울이면 가장 생각나는 나무는 개인적으로 동백나무이다. 겨울산 이야기 하다 갑자기?
흔히 볼 것 없는 숲이라 하지만 나름대로의 겨울산은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상적인 것의 소중함보다는 소유하지 못한 것에 더 끌리기 마련이라 겨울이면 남부지방의 동백꽃 소식이 더 기다려지는 이유다.
십 여년도 훨씬 전에 홍릉수목원에 시범적으로 키우는 자그마한 동백나무가 있었다. 주로 따뜻한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동백나무가 기후변화로 중부지방 야외에서도 겨울을 넘기고 자랄 수 있는지 시범적으로 시험하는 시험포에서 기르는 나무였다. 어째든 지금은 동백나무가 간간이 야외에서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식물들이 꽃 피우기에 여념이 없는 좋은 계절을 마다하고 동백나무는 한겨울에 꽃을 피운다. 벌도 나비도 없는 겨울날에 어떻게 꽃가루받이를 할 것인가? 이 어려운 과제를 아주 작고 귀여운 동박새와 ‘전략적인 제휴’를 함으로써 슬기롭게 해결했다.
우선 동백나무 잎 크기에 버금가는 큰 꽃에서 많은 양의 꿀을 생산하도록 만들고 꽃통의 맨 아래에 꿀이 담긴 보물창고를 배치했다. 위에는 노란 꽃술로 덮어두었다. 동박새로서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하여 열량이 높은 동백나무의 꿀을 열심히 따먹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동박새는 꿀을 가져갈 때는 깃털과 부리에 꽃밥을 잔뜩 묻혀 다른 동백꽃의 여기저기 옮겨 수분이 가능하도록 한다.
자연은 어떤 것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동백꽃의 진한 붉은 꽃잎과 샛노란 꽃술도 그냥 만든 것이 아니다. 새는 색채 인식 체계가 사람과 비슷하여 붉은색에 특히 강한 인상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가 초록 바탕에 펼쳐지는 강렬한 붉은 색깔의 동백꽃을 금세 알아보듯이 동박새도 쉽게 눈에 띄도록 배려한 것이다. 자연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이렇게 새에게 꿀을 제공하고 꽃가루받이하는 꽃을 조매화(鳥媒花)라고 한다.
동백나무는 흔히 숲을 이루어 자란다. 고창 선운사, 강진 백련사, 여수 오동도, 보길도의 윤선도 유적지, 해운대의 동백섬 등 알려진 숲이 많다.
우리의 토종 동백꽃은 모두 붉은 홑꽃잎으로 이루어져 있다. 돌연변이를 일으킨 분홍동백과 흰동백은 아주 드물게 만날 수 있다. 겹꽃잎에 여러 가지 색깔을 갖는 동백은 자연산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만든 고급 원예품종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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